야화 38화
야화 38화
나 혼자라면 이틀 반나절이면 될 것을, 아옥과 같이 가는 바람에 열흘 정도가 걸렸다. 천마와 지마로부터 진식의 기초와 음공의 기초를 열흘 동안 배우고, 복우산으로 돌아 올 때는 이레 밖에는 걸리지 않았다. 신년 새해의 태양이 떠 오르려면 아직도 보름이 더 남아 있었다.
섣달 보름.
차갑고 싸늘한 12월 달의 보름달을 바라다 보면서 아옥과 나는 따끈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아옥의 진전은 눈부신 것이어서, 축지법을 8성 정도 익히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천면신공을 전수하기로 하였다.
보름 달 밑에서 처음으로 내 진면목을 내 보이고, 천면신공을 전수하기 시작 하였다. 얼굴만을 바꾸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몸집을 크게도 하고 작게도 하려면 축골공을 배워야만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목소리를 바꾸는 변성법도 알아야만 한다.
변성법은 지마가 가르쳐 준 음공의 기초를 배운 덕분에 좀더 쉽게 배울 수 있었지만, 축골공은 많은 고통이 따라야만 했다. 중간 중간에 무영신투가 남긴 절기도 수련을 해야 했고 나에게 음률을 가르쳐야만 했다. 그러나 아옥은 수련에 열중 했다. 조금이라도 내 짐을 덜어 주려는 노력이었다.
두 달이 지난 2월 보름.
나와 공주는 21세가 되었고, 봉선화는 20세, 홍 아옥은 19세가 되었다. 남경 황금전장으로 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옥의 천면신공도 쓸만한 수준이 된 것이다.
아옥은 얼굴을 변용할 필요 없이, 그냥 독곡의 소공녀(小公女)로써, 황금전장에서 일하는 독곡의 수하들만 잘 장악하고 다스리면 될 것이었다. 나머지 적금산의 패거리들은 귀산신묘로 변신을 하고 있는 봉선화가 장악을 하면 된다.
복우산을 출발한 다음날 낮에, 손님을 가장하고 황금전장에 들렸다. 얼굴은 낯 설지만 내 몸에 심어 놓은 천리미향 냄새를 맡고, 귀산신묘로 변신한 봉선화가 나를 알아 보았다. 내 귀에 전음이 들려 왔다.
(신산귀수의 마누라로 변장을 하고, 얼른 돌아 오셔요)
(매풍장원에 옷 보따리가 있으니, 갈아 입고 오리다)
매풍장원에 들려, 귀산신묘의 마누라로 변장을 하였다. 그리고 홍 아옥을 데리고 황금전장의 사택으로 돌아 갔다. 기별을 받고 귀산신묘가 나타났다.
"아 아니...친정에 갔으면 갔지...몇 달씩 이게 무슨 짓이오?"
"서방님... 그 동안 몸에 병이 나서..."
"몸이 아팠단 말이오?... 장주 부인 마님에게 돌아왔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아니오...어서 짐을 내려 놓고, 부인 마님에게 인사를 올립시다"
아옥이 마음 속으로 쿡쿡거리며 웃고 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였다. 나도 웃음을 참고 있는데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부인 마님 방으로 들어 갔다. 추월이 차를 내 왔다. 추월이 나가고 난 다음 한바탕 웃음 꽃이 피어 났다.
"아옥이구나...내가 큰언니고, 작은 언니 봉선화다"
"작은 언니! 홍 아옥이에요"
"우리 친하게 서로 잘 지내 보자... 언니 이럴 것이 아니라 밀실에 내려 가요"
"황하고 너 먼저 내려가... 나는 아옥이와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듣고 있을 께"
"찬물도 위 아래가 있는 것 아니 유"
"호호 호호... 화 동생이 빨리 죽고 나와야...나는 밤새 죽을 것 아니니?..."
"얄미워 그렇게만 해 봐..."
나는 봉선화와 함께 지하밀실로 내려가고, 아옥은 공주와 그 자리에 남았다. 공주가 묻지 않아도 지난 이야기를 모두 할 것이었다. 하나도 숨기지 말고 모두 털어 놓으라고 일러 둔 것이다.
매달려 오는 봉선화 를 끌어 안았다. 여인이면 다 같은 여인이 아니다. 신체적 조건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여인을 안아 보면 모두가 다르다. 사정을 한다는 의미로만 따진다면 다를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정서가 모두 달랐다.
봉 선아는 거침 없이 욕구를 토해 냈다.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아났는지 모른다. 겨우 내 품안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동안 지낸 이야기를 물어 왔다. 무영신투의 보고를 찾은 일에서부터 소택 안에 쌓인 사금을 찾아낸 일, 그리고 무영신투의 비급과 보물 이야기, 천마 지마에게서 진법과 음공을 배우게 된 것까지 모두 이야기를 하였다.
"무엇 보다도 황이 음률을 배웠다는 게 반갑군요"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오... 무인이기 보다는 문인으로 살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오...시 서 화 음이라고 한다는데, 이제 시만 공부를 하게 되면 조금은 짐승에서 사람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오"
"사람도 사람 나름이고 짐승도 짐승 나름이에요... 언니로부터 황이 태산 산자락에 살던 옛집을 그리워 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아옥이 왔으니 독곡의 아이들은 아옥에게 맡기는 것만으로도 큰 짐을 덜었으니, 언니와 태산으로 떠나도록 하셔요"
"화를 혼자 두고 간다는 것이..."
"아옥이 있잖아요...한 달에 한 번은 너무 길고, 두 달에 세 번쯤만 다녀 가셔도 되요"
"3월이 되면, 산야가 동면에서 깨어 나면서 기지개를 펼 시기요... 태산 옛집을 손질 하고, 그 곳에서 무영신투가 남긴 절기와, 천마의 진법 그리고 지마의 음공을 완전히 소화하고 싶소"
"그렇게 하셔요... 나는 아옥 동생에게 배울 테니까 요"
"아옥은 겪어 보면 알겠지만 순수한 영혼을 지닌 아이요... 화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아이이니, 잘 가르치기 바라오...닷새 후에는 태산으로 가도 되겠소?"
"그렇게 하셔요...내 눈치 볼 것 없어요...급한 연락을 할 것이 있으면 제남의 관아에 들려서, 남경의 제형안찰사사 앞으로 전갈을 보내 주시면 돼요"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는 공주와 나 두 사람이 밀실에 내려 왔고, 봉선화와 아옥은 위에 남았다. 질펀한 정사가 끝난 것은 자정이 넘었을 것이었다. 태산으로 가야 할 일부터 의논을 하였다.
"호호 호호...드디어 황 노야와 봉 노파가 무림에 출도 하실 날이 왔군요... 안팎으로 뒤집어 입을 수 있는 두 가지 색의 옷을 침공국(針工局)에 부탁을 하면, 사흘은 걸릴 것이에요... 도 하나는 어떤 냄새를 맡았는지, 건문제의 잔당들이 남경을 들락거린다나 봐요"
"이번 태산으로 가는 길에 유인을 할 생각이구려"
"호호 호호... 황을 속일 수는 없다니까요... 취아선 그 늙은이도 끌어 낼 생각이에요"
"본 모습을 하고 남경시내를 활보 하겠다는 것이오?"
"닷새 후에 남경을 출발 할 때는 꼬리가 붙을 것이에요...그 동안 갇혀 지내서 답답했는데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나 대신에 아옥에게 마님 행세를 하도록 해야만 하겠어요"
"들통이 나지 않겠소?"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 되는 사람은 추월 밖에 더 있어요?...우리가 떠날 때까지 닷새면, 마님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에요...나머지는 화 동생이 알아서 할 것이고요"
"아랫것들을 엄히 다룬 모양이구려..."
"아랫것들은 모두 화 동생을 통하거나 아니면 화 동생이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려, 나와 직접 대면을 하는 일을 없앴어요"
"내가 뭘 알겠소...황금전장에 관한 한 공주와 화 동생 두 사람 의견을 따르리다. 답답해서, 앞으로는 황금전장의 일에는 개입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오"
"내일 밤부터는 화 동생과 아옥을 더 많이 안아 주도록 하세요... 나는 앞으로 얼마든지 죽었다 깨어날 수 있으니까요 홋 홋 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