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61화
야화 61화
3월 중순인데도 북경은 아직 꽃망울이 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중도성을 개축하느라고 모여든 인부들이 밤 늦게까지 북적대고 있었다. 그런데 야밤 중에 두 곳에서 불이 났다. 도방과 주점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태원과 제남에서도 한 날 한시에 노름방과 주점 두 곳에 불이 붙어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했다고 하였다. 들리는 소문에는 마교의 소굴이라고 했다.
연왕부에 앉아 공주와 담소하고 있던 나는 총관이 전해 주는 쪽지를 받아 읽고 공주에게 넘겨 주었다. 공주도 쪽지를 읽고 나더니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관아를 통해 전달 되어 온 급보였다.
"숙부가 전서구를 날리는 일은 없는데, 전서구를 날려 우리를 부른 것을 보니 급한 사정인가 본데 제남에 들려 화 동생을 데리고 빨리 가 봐야하지 않겠어요"
"그럽시다...금전표가 새끼를 낳아, 새끼 두 마리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자칫 금전표 새끼들을 다치게 할지도 몰랐다오. 그래서 봉을 데리고 가서 새끼들하고 대면을 시키려고 했는데 글렀구려"
"화 동생을 데려 갔다면, 화 동생하고는 친해졌을 것 아닌가요?"
"봉이 자주 들려 줬으면 해서 하는 소리요...2녀 가까이 모른 체 하고 있었으니 우리가 너무 한 것 아니오?"
"알았어요 황이 들리지 못하면 나라도 가끔 들려 보도록 할께 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빨리 가 봐야 하지 않겠어요?"
"취아선이 자기를 따 돌렸다고 또 아우성을 치게 생겼구려"
"술만 있으면 걱정 없는 늙은이여요..."
남경 제형안찰사사에 도착을 해서, 안찰사 봉충환을 만나 보았더니 매우 비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라는 것만은 대뜸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숙부..."
"... 내 수하 중에서 고르고 골라 9명을 내 보냈는데, 모두 죽었는지 소식이 없다가, 구강(九江) 관아를 통해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다지선자(多知仙子) 제갈산산(諸葛珊珊)이라는 이름과 남궁세가(南宮世家)라는 말만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하오"
"구강이라면, 남궁세가가 위치한 고장이 아니에요"
"다지선자와 남궁세가가 이번 일에 관련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오"
"황! 당장 나와 같이 남궁세가에 가 보도록 해요"
"언니! 이 번에는 아옥이, 오라버니와 함께 다니게 하겠다고 아옥 동생과 약속을 했단 말이에요..."
"옥 동생도 답답했을 꺼야...내가 아옥 대신을 할까, 아니면 화 동생이 할래?"
"아무래도 전장 사정은 내가 더 밝으니 내가 아옥 대신으로 들어 앉을 께...언니는 다시 북경으로 가서 북경 쪽을 관리해 줘... 새로 신축 중인 건물도 점검 해 주고..."
"황! 제남에 들려 나 혼자 옛집에 가 봐도 될까?"
"낮이라면, 어미가 있을 테니 상관 없겠지만, 밤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아옥도 만나 보지 않고 그냥 떠날 작정이오?"
"얼굴만 보면 뭘 해요...그냥 다녀 갔다고만 하세요"
"호호 호호... 나는 오랜만에 귀산신묘 노릇을 해야지... 아옥 동생을 내 보낼 테니 여기서 기다려요"
오래 기다리지 않아 아옥이 뛰어 들어 왔다. 나는 아옥을 데리고 남궁세가가 있다는 구강으로 향했다.
"다지선자라는 계집에, 보통이 넘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군요"
"어떻게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요?"
"예쁜 것도 예쁜 것이지만, 그 지혜가 제갈량 뺨친다는 소문이에요"
"조심해야 될 것 같소"
"아무려면 그 계집애에게 질까 봐서요?"
"그것이 문제요... 증오심이나 경쟁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금물이오"
"옛날 같았으면 경쟁의식을 가졌을 것이에요...그러나 지금은 상대가 안 되요"
"또 그러는 구려...만약 금가면 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작은 방심이 일을 그르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하오... 금가면 이라고 생각을 하고 심중하게 상대를 해야만 할 것이오"
"알았어요...오라버니하고 오랜만에 단 둘이 나와서 내 마음이 들 떠 있었나 봐요"
"내 마음도 들 떠 있기는 마찬가지요...그러나 우리 조심을 합시다"
말로만 듣던 남궁세가에 도착을 해 보니 그 규모가 듣던 것 보다도 어마어마할 만큼 크고 넓었다. 잠영공(潛影功)을 펼쳐 그늘 속을 누볐다. 온통 숲으로 덮여 있으니, 잠영공을 펼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무영자와 귀령자의 무영신공을 수련한 두 사람이었다. 형체도 그림자도 없이 그대로 벽 속으로 스며 들 수 있는 신공절기를 가졌지만, 외각부터 빙 둘러 보았다. 어디에 어떤 함정이 설치 되어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으로 파고 들어 갈 수록 경비가 삼엄했다. 군데군데 나무 위나 나무 둥치 안에 숨을 죽이고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이 수없이 배치 되어 있었다. 원을 그리며 안으로 안으로 좁혀 들어 갔다. 때로는 그림자가 되고 때로는 바람이 되었다.
외원(外園)을 지나 내원(內園)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 갔다. 밤 늦은 시각인데 50대 초로(初老)의 노인과 아리따운 여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가주 섬뢰일검(閃雷一劍) 남궁혁(南宮赫)과 다지선자가 분명해 보였다.
"이런 이런 이런... 내가 또 졌구나..한 판, 한 판만 더 두자"
"오늘은 연속 세 판을 지신 것을 보니, 숙부님이 피곤하신가 봐요.제가 어깨를 좀 주물러 들일 께 요"
"그래 주겠니..."
보료에 앉아 안마를 받고 있던 남궁천이 팔베개를 하며 비스듬히 누우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오래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저려 오는구나...다리를 좀 주물러 주겠니"
"호호 호호...숙부님도 이제는 늙으셨나 봐"
"내가 늙었다고?... 당찮은 소리...한 번 만져 보겠니?"
늙은이가 제갈산산의 손을 덥석 잡더니, 자기 사타구니로 산산의 손을 끌고 갔다. 끌려 가면서도 당황하는 빛이 하나도 없는 제갈산산이었다. 그러면서도 죽는 시늉을 했다.
"왜 이러셔요 숙부님... 놓아 주세요 손 좀 놓아 주세요... 아이 숙부님도..."
"어떠냐? 이래도 내가 늙었단 말이냐?"
"누가 들어 온단 말이에요... 아이, 아이... 그러지 좀 마셔요..아이 아이..."
"아아~ 포동포동하고 미끈미끈한 살결이로구나..."
"숙부님...제발 제발..."
"이것아...내 말을 들으면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마...남궁세가를 송두리째 달라고 해도 내 주마"
"정말이지요?...정말 약속 하시는 거지요?"
"정말이고 말고...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연공실(練功室)로 옮겨서 이야기 하자"